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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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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6-11 11:49 조회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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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의 동반자


< 한 영 실 >



2000년 내가 결혼 후 임신 중일 때 친정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후유증으로 편마비가 심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은 재활로 많이 좋아졌다지만, 엄마는 재활을 해도 상태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모든 뒷일은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몫이 되었고 가족 중 유일한 딸이자 여자인 나의 몫이 제일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임신과 출산을 친정엄마의 도움 없이 홀로 겪어야 했고, 남자만 있는 친정집 안에서 엄마의 존재는 시간이 흐를수록 찬밥신세처럼 느껴졌다. 내가 모시고 살고 싶었지만, 형편이 넉넉지 못한 상황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엄마는 본인이 짐이 되었다는 생각에 우울함과 미안함을 갖게 되었고, 나를 포함한 가족들 역시 슬슬 지쳐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2008년 6월로 기억된다. 평소 인터넷 검색을 잘하던 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제도가 다음 달부터 생겨나고 엄마처럼 중풍이나 뇌출혈 등 노인성 질환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정부에서 지원해서 보살펴 준다는 내용을 발견하고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우리처럼 형편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도 가족을 지킬 수 있구나….’ 속으로는 시간이 계속 흘러 나도 모르게 엄마를 외면할까 봐 말 못 할 두려움이 있었다. 현실은 나도 힘든데 엄마는 혼자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으니….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이런 뜻밖의 제도는 나에게는 단비였고 엄마에게는 동반자가 되었다.


드디어 나는 첫 제도 시행일에 맞춰 신청을 했다. 더운 여름날 공단 직원분이 오셔서 엄마한테 이런저런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후 3등급이라는 인정서를 받았고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하루 4시간 엄마의 손발이 돼 주셨다. 직장에 나가 있는 동안 불안한 마음이 컸는데, 엄마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이 이처럼 마음을 가볍게 해줄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참 신기하고 좋았던 것은 고작 10여만 원 정도에 사람이 매일 방문해 준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혹시나 이런 제도가 없어지면 어떡하지?’라는 괜한 고민도 했던 기억이 난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방문으로 엄마는 조금씩 웃기 시작하셨다. 원래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시는데 전에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TV 드라마를 보면서 자주 울곤 하셨다. 하지만 다행히 수다가 많았던 요양보호사 선생님도 엄마랑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엄마를 ‘언니’라고 부르셨다고 한다. 엄마가 ‘어르신’ 호칭은 빼 달라고,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좋다 하셨다며…. 이처럼 엄마는 매일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시는 것을 기다리게 됐고 두 사람은 친구처럼 자매처럼 휠체어 타고 시장에서 어묵이랑 호떡 등을 같이 나누어 먹는 친근한 사이가 됐다.


딸의 입장에서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었고 ‘엄마’라는 존재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 내게도 마음의 여유와 안정이 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간이 이어져 지금까지 우리 엄마는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고 계신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저귀를 차야하고 집 안에서는 늘 소변 냄새가 나지만 엄마는 이제 크게 미안해하지 않으신다. 왜냐면 자식들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를 위해 도움 주는 사람이 매일 오니까 라는 안도감에 스스로도 안정을 찾으셨다.


 


장기요양보험 출범부터 현재까지 9년째 같이 해 온 우리 엄마는 일명 ‘초창기 요양 멤버’다. 엄마는 “나같이 늙고 병든 장애인을 누가 돌보아 줄 수 있느냐”고, “이런 제도가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이런 제도를 만든 분께 꼭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정 중에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티격태격도 하기도 하시고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선생님들이 바뀌기도 했지만, 예전 선생님과 연락도 하시는 걸 보면 엄마는 모두 고맙게 생각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선생님들을 반가워하시고 배려해주시고 또 힘든 일은 못 하게 하시는 센스까지 갖고 계시면서 말이다.

한 번은 엄마가 병원을 다녀오다가 아파트 복도 입구에서 대변 실수를 크게 하셔서 우리가 살고 있는 10층 전체가 냄새로 진동했던 일이 있었다. 엄마는 빨리 죽어야 한다고 울고 계셨고 선생님은 괜찮다고, 환자는 다 그런 거라고 위로하시면서 복도를 치우시고 목욕시켜 드리고 옆집 분들께 죄송하게 됐다고 사과까지 직접 하셨던 기억이 난다. 딸인 나는 너무 죄송해서 ‘저한테 전화 주시지 그러셨냐?’고 여쭤봤더니 선생님은 ‘자식이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 아픈 법’이라고, ‘이런 일은 남이 하는 게 더 좋다’고 하셨다. 이 말이 참 가슴 아프게 다가오면서도 너무 감사해서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은 사명감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보수를 준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남의 용변처리가 말처럼 쉽지 않으니 말이다.




 또 기억나는 일은 1년 전쯤 남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차량을 가지고 출퇴근하셨는데 엄마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산소를 15년째 한 번도 못 가봐서 너무 가보고 싶다고 하셨던 것 같다. 하루는 출근하자마자 모시고 가겠다고 나와 함께 휠체어 등을 싣고 백석에 있는 산소를 갔었는데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산소를 엄마는 쳐다만 보고 울고 계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60킬로가 훨씬 넘는 엄마를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여기까지 오셨으면 술 한 잔 따르고 가셔야 한다면서 산소 앞에 앉게 해 주셨다. 엄마는 울면서 술 한 잔 올릴 수 있었고 옆에 서 있던 나는 미안하기도 너무 고맙기도 해서 어떻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지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은 왜 엄마를 모시고 갈 생각을 못 했을까’라는 후회가 되고, 동시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엄마 마음을 헤아려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할 뿐이다.


이처럼 엄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일을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겪고 공감하고 계신 것이다. 살아온 이야기, 아픈 이야기, 또 말 못 할 이야기 등을 선생님들과 나누면서 위로받고 즐거우셨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딸인데도 엄마가 오래 이야기를 하시면 듣기 싫은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고 하고, 어리광을 부리시면 더 단호하고 매몰차게 대꾸했었다. 피가 섞인 자식들도 함께하지 못했던 많은 사연들을 선생님들이 대신해주셨던 것이다. 흔히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를 치료할 때,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 기법을 이용한다고 알고 있다. 사람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후련함과 속 시원함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어르신들에게는 훌륭한 의사가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은 요양보호사의 업무가 그저 집안일 하는 어르신 전용 파출부쯤으로 생각하기도 한다지만, 나는 어르신들의 친구이자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매일 어르신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리고, 안마를 해 드리고, 같이 외출해 주시고 할까…. 바쁘다는 핑계로 정신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우리 자식들은 정작 우리 부모님의 외로움과 불편함을 알기나 할까! 알아도 모르는 척, 알고 싶지 않은 척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정말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엄마의 아픈 삶에 친구가 되었고 죽음까지 같이 할 동반자가 되었다. 이제는 자식이나 남편보다 더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런 소중한 제도가 더욱더 발전하길 바라며, 엄마처럼 몸이 불편하고 소외된 어르신들이 제도를 모르고 혼자 방치되는 일이 없길 진심으로 바란다.


출처 : 장기요양보험 행복한동행

http://www.longtermcare.or.kr 



- 2017 장기요양보험 수기 공무 장려상 한영실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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