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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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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4-03 12:14 조회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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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  이학춘 >


“사무국장님, 빨리요 빨리! 홍 어르신이… 흑흑흑.”
나는 시설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의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지나갔다.
나는 급히 차를 몰고 시설로 갔고, 문 앞에서 직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 홍 어르신 어디 계세요?”
“아침부터 식사도 잘 못 하시더니 갑자기 정신을 잃고 힘없이 주저앉으셨어요. 혈압도 낮으시고….”
상황이 좋지 않았으나 직원들의 신속한 처리 덕분에 곧바로 119구조대가 와서 홍 할머니는 결국 응급실로 옮겨졌다.
“어르신, 눈 좀 떠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네?”
다행히 홍 할머니는 의식을 찾았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다시는 시설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홍 할머니는 그렇게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홍 할머니와 나의 첫 번째 인연은 4년 전 재가센터를 혼자 운영하던 시절 홍 할머니의 아드님에게 걸려온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홍 할머니의 아드님은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님이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등급을 신청해 달라고 했다. 난 홍 할머니 아드님의 부탁을 받고 등급 신청을 위해 직접 홍 할머니 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낡은 흙집에서 유난히 체구가 작고 피부는 검게 그을린 할머니 한 분이 작은 비닐하우스 구석 한쪽에 쭈그려 앉아 호두를 까고 계셨다.

“혹시 홍 할머니 되시나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난 홍 할머니와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되었고 홍 할머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장기요양 2등급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아드님이 내게 장기요양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으셔서 자연스레 홍 할머니와도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그러고 몇 달이 흐른 뒤, 내가 운영하던 재가센터는 한 시설에 합병되었고, 이곳에서 나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되었다. 2년 남짓 혼자 재가센터를 이끌어가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다가 새로운 일터에 출근을 하려니 설레는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첫 출근을 하는 날 나는 입소해 계신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한 분씩 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총 18분이 계셨는데 치매나 중풍으로 인지능력이 떨어지거나 혼자서는 거동을 못 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방 한편에 낯익은 얼굴의 어르신이 계셨다. 바로 홍 할머니였다. 난 반가운 나머지 할머니를 와락 껴안았다.
“할머니, 저 기억나세요? 몇 달 전에 할머니 댁에 방문했었는데… 어떻게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아무튼 반가워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뵈니 너무 좋네요.”
며칠 뒤, 소식을 전해들은 홍 할머니 가족들은 나를 찾아왔다.
“학춘 씨, 그때는 번거롭게 해드려서 정말 미안했어요. 어머님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시설에 입소시켜드리게 됐거든요. 따로 연락도 못 드리고 미안합니다. 애써주셨는데… 어머님께 학춘 씨가 여기서 근무한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고마워요….정말 고마워요….”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홍 할머니 아드님은 꼭 잡은 내 두 손을 한동안 놓지 않으셨다. 그렇게 홍 할머니와 나의 두 번째 인연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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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활짝 피기 시작하는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허리가 심하게 굽어 하루 종일 옆으로만 누워계신 홍 할머니를 일으켜 세워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하러 나갔다. 홍 할머니의 산책 담당은 늘 내 몫이었다.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홍 할머니는 항상 자기를 챙겨줘서 고맙다며 그날 나온 간식을 꼭 쥐고 계셨다가 나를 주시곤 했다. 간식이 없는 날에는 주머니에 꼭꼭 싸둔 알사탕까지도 말이다.
“할머니, 나오니까 좋으시죠? 식사 잘하시고 건강하셔야 저랑 오랫동안 산책할 수 있으니까 이런 거 아껴두지 마시고 할머니 드세요.”
“그런 소리 말어! 내가 좋아서 그려.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어서….”
그렇게 홍 할머니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어갔다.

한 번은 병원 동행을 나가던 날이었다. 부지런히 채비를 하고 나섰는데도 그날따라 병원에 환자들이 많아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진료가 끝나고 시설로 돌아갈 때쯤이면 점심시간과 어긋날 것이 뻔했다. 결국 난 할머니와 외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할머니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어요? 자장면 사드릴까?”
“아니여, 먹고 싶은 거 없어. 그냥 들어가. 별로 밥 생각도 없어.”
나는 미안해하시며 그냥 들어가자는 홍 할머니를 붙잡고 시장을 뒤져 따끈따끈한 호빵과 만두를 사서 드렸다.
“할머니 맛있죠? 먹고 싶은 거 생각나거든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유~ 식사 거르시면 큰일 나요. 잘 드셔야 돼요. 아시겠죠?” “그려, 고마워.”
치아가 안 좋으셔서 항상 턱밑까지 음식물이 흘러내리곤 했는데 왠지 모르게 그날따라 호빵을 드시는 홍 할머니의 모습이 유난히 슬퍼 보이는 날이었다.

 

나는 인연이 깊은 홍 할머니에게 유난히 정이 갔고, 출근하지 않는 날에도 들여다보며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늘 관찰하곤 하였다. 그렇게 3년 정도가 흘렀을까. 홍 할머니는 점점 야위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파킨슨 병(몸이 점점 굳어가는 병)을 앓게 되셨다.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되면서 홍 할머니와는 처음을 같이 맞이했고 3년이란 시간 동안 어버이 행사, 성탄절 행사 등 많은 추억을 함께 나누었기에 홍 할머니가 병을 앓고 힘들어하시는 모습에 누구보다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 할머니의 몸은 급격히 나빠져 갔고 혼자서는 밥도 못 드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으며, 혼자서는 용변도 볼 수 없어 기저귀를 차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몇 달 뒤, 다급한 목소리로 직원에게 전화가 걸려오던 그 날 홍 할머니는 결국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하게 됐던 것이다. 더 이상 시설로 돌아가 생활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친한 친구 한 명을 잃은 것처럼 아쉽기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리고 말동무도 자주 되어 드릴 걸 괜히 못해드린 것에 대한 늦은 후회만이 남았다. 나는 홍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두고 뒤돌아서서 나올 때까지 해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할머니 꼭 일어나셔서 저랑 다시 만나요. 장에 가서 또 호빵 사 드릴게요. 네?’ 혼자만의 외침이었다.

병원을 나선 뒤로는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느라 홍 할머니의 안부조차 묻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홍 할머니의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다. 난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가려고 채비를 하는데 승용차 세 대가 시설 앞마당에 나란히 멈춰 서더니 상주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무리 중 낯익은 얼굴의 남자 한 분이 내게로 다가왔다.
“학춘 씨,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그럼요 물론이죠, 홍 어르신 아드님이시죠? 혹시 어르신께 무슨 일이라도….”
“네, 어머님이 엊그제 돌아가셨습니다. 시설에서 나오신 뒤로 계속 병원에서 생활하시다가 결국….”
“유감스럽습니다. 다시 꼭 홍 할머니 뵙고 싶었는데….”
“오늘 제가 온 이유는 학춘 씨 찾아뵙고 꼭 전해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어머님께서 임종을 맞이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나도 꼭 이곳에 살고 싶다는 말씀을 남기셨어요. 특히나 학춘 씨를 그리워하시며 말씀하시는 듯 보였어요. 자식으로서 목이 서지 않기도 했지만 꼭 이 말씀만은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난 홍 할머니 아드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너무나도 가슴 벅차고 뭉클했던 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마 평생 내 마음속에서 홍 할머니의 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진하게 퍼질 것이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에서 찾아온다. 남을 행복하게 하면 내가 행복하고, 내가 행복하면 남도 행복해한다. 홍 할머니와 나는 서로에게 그런 상대가 되어 준 것이 아닐까. 서로에게 그런 상대를 만날 수 있게 된 건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 덕분이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면서 수많은 인연들이 맺어졌다. 우리는 어르신들에게 때로는 자식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배우자가 되어 주기도 하는 일인다역의 연기자 역할을 서슴없이 해내야 한다. 내 일을 사랑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며 일 한다면 아마 어렵지 않게 모든 역할을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이며 보는 사람도 분명 진정한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이미 무대는 지어졌으니 우리는 홍 할머니같이 행복해하는 상대를 만나는 일만이 남았다. 그러기에 나는 다가올 인연에 늘 설렌다.

아직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줄 안다. 온 국민이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고 아름다운 노후생활을 펼칠 수 있도록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대해 알고 실천할 수 있는 그 날까지 누구보다 부지런히 뛰어다닐 것이다. 또한, 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행복을 전해 줄 것이다. 내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딸아이가 있다. 딸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거든, 공부 잘하는 아이나 주변에 친구가 많은 아이보다는, 혼자 밥을 먹는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게 바로 외로운 아이에게 내 딸아이가 전해 줄 수 있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커서 어른이 됐을 때, 함께 나누어 먹은 사람의 행복은 그 배가 될 테니….



출처 : 장기요양보험 행복한동행

http://www.longtermcare.or.kr 



- 2017 장기요양보험 수기 공무 장려상 이학춘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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