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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열혈 팬, 우리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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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3-05 13:31 조회1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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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열혈 팬, 우리 어르신


<  용준원  >




어르신과 첫 만남은 9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작된 2008년 여름, 나는 광주○○요양원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본가인 서울에서 광주로 짐을 꾸려 내려왔다. 가족도, 친구도, 친인척도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 혼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마침 요양원 개원 직후라 직원들은 한 분 한 분의 입소 어르신들을 정성스레 맞이하며 요양원 생활의 적응을 돕고 있었다. 동병상련의 기분이라고 할까? 그렇게 낯선 환경에서 어르신들과 나는 이곳에 함께 적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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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몸집이 아주 크고 인상이 강한 여자 어르신께서 치료를 받기 위해 내가 일하는 작업치료실로 오셨다. 내가 처음 본 어르신의 인상은 한마디로 ‘호랑이’상이었다. 몸집도 컸지만 목소리도 어찌나 크시던지 첫인상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르신은 치매는 아닌 듯 보였다. 인지 평가 결과 인지상태는 양호하였으며 본인이 왜 이곳을 택했고,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고 싶은지를 직접 이야기하셨다.

어르신은 입소 전에 연이어 4차례 고관절 수술을 한 후로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셨다. 기저귀를 차고 배변을 해결하였으며 누군가가 휠체어를 밀어줘야 이동하실 수 있었다. 3남 1녀의 자녀들이 있었지만 돌봐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노인장기요양등급 2등급(시설급여)을 받고 스스로 입소를 결정했다고 하셨다. 입소 전까지 혼자 생활하셨다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천안에서 홀로 생활하시는 외할머니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호랑이 어르신께서 점차 요양원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다른 어르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같은 방으로 새로운 어르신이 입소하시면 텃세를 부리기도 하고, 치매 행동을 보이는 다른 어르신에게는 욕설과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본인보다 나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골라 하인 부리듯 심부름을 시키시기까지 했다. 또한 어르신은 늘 부정적이었다. 운동할 때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는 옆에서 모든 것을 해주기를 바라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셨다. 고관절 수술을 여러 차례 하셨던 터여서 또 다칠세라 조금의 움직임도 조심스러워하셨다.


   

그리고 항상 자기중심적이었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 생활할 수 없었지만 본인이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됐고 우선순위에서 1등이 아니면 그 날은 요양원 전체가 큰일 나는 욕심쟁이 할머니였다. 예를 들어 목욕하는 날 목욕 순번이 첫 번째가 아니면 담당 요양보호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매사에 심통을 부려 일하는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직원들의 마음을 하루 종일 불편하게 하였다. 자녀들은 어르신에게 관심이 많았지만 건강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고 어르신이 다치지 않고 현재 건강 상태가 유지되기만을 바랐다.

바로 그때! 나는 이 어르신을 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하였고 어르신을 위한 사례관리에 참여했다. 작업치료사로서 어르신의 하반신 통증 완화 및 재활 치료와 더불어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과 협력하여 일상생활에 변화를 주도록 계획하였다. 처음부터 어르신을 설득하고 변화를 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치료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어르신과의 스킨십이 필수였고 스킨십을 통해 어르신과 더 가까워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어르신께서는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에게 하나씩 꺼내셨다. 나는 일단 어르신의 말씀을 최대한 들어주고 호응해주었다. 그리고 치료와 운동을 함께하면서 자신감을 주도록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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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차츰 어르신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겁이 나서 휠체어 아래로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던 분이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자신감을 찾았으며 행동은 눈에 띄게 좋아지셨다. 그리고 신체 컨디션이 점차 회복되면서 작업치료사인 나를 믿고 의지하였으며 긍정적으로 변하였다. “어르신~ 이거 한번 해보세요~.” 권유할 때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지 마.” 또는 “안 해.”라고 답하던 어르신이 “그래? 용 선생이 해보라니깐 해볼까? 히히.” 하며 웃고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렇게 조금씩 연습했던 것이 벌써 9년이 되었다. 지금도 어르신은 치료실 내에서 짧은 거리 보행 연습이 한창이다. 요양실 내에서도 침상에서 화장실까지 안전 바를 잡고 타인 도움 없이 자가 보행하며 스스로 배변처리를 하면서 기저귀도 착용하지 않은 지 꽤 되었다.

 

한결 좋아진 어르신의 건강 상태를 지켜보며 보호자들은 아주 만족해한다. 입소 초, 본인이 모시지 못하고 요양원 입소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마음을 눈물로 보인 딸과 건강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큰아들이 나에게 와서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치료사로서의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사례관리를 하면서 어르신의 신체 상태도 좋아졌고 부정적, 자기중심적이며, 욕심이 많던 어르신의 일상생활과 정서적 상태 역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처음 어르신은 “이런 거 안 해! 내가 미친 사람인줄 알어? 나는 정신 말짱해!”라며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던 어르신이었다. 한동안 어르신의 행동과 말씀을 관찰한 나는 어르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대화 나누기임을 알았다. 말벗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먼저 자원봉사자를 일대일로 연계하여 휠체어를 밀어드리고, 정원으로 나가 바깥 구경을 하며 기분 전환을 할 수 있게 도왔다. 산책을 하고 난 후 책을 읽어드리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등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프로그램에도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은 프로그램 참여를 재미있어 하셨다. 그래서 지금은 미술, 음악, 체조 등 어떤 프로그램에도 잘 참여하신다.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했으며 더 이상 심통을 부리지도 않았다. 약자에게는 선행을 베푸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누어 드시기도 하고, 프로그램 가실 때에도 혼자보다는 다른 어르신들과 함께 참여하시기를 좋아한다. 결과적으로 사례관리를 통해 어르신은 긍정적으로 변하셨고 어르신은 신체 상태도 좋아졌다. 장기요양등급 결과가 어르신 상태가 호전되었음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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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되면 자녀들은 하룻밤이라도 가족들끼리 집에서 주무시자고 외박을 신청하려고 하지만 어르신은 거부한다. 집보다 여기가 편하고 자식들보다 요양원 직원들이 더 좋다고 한다. 함께하는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이 변했다. 처음 봤을 때 호랑이같이 무섭게 보였던 어르신의 표정도 어느새 양처럼 온화해지셨다. 그리고 어르신은 지금 나의 열혈 팬이 되셨다. “나를 낫게 해준 사람은 용 선생뿐이다.”라며 내가 하는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으신단다. 혹여 내가 출장으로 근무를 하지 않는 날이면 치료실에서 “우리 용 선생, 우리 용 선생” 하며 나만 찾는다는 어르신, 주말이 되면 용 선생을 볼 수 없음에 주말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귀여운 어르신이다.


내년이면 어르신과의 만남도 10주년이 된다. 그동안 많고 많은 어르신들과 함께 한 세월 동안 특히 이 어르신이 내 기억에 남는 건 왜일까?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지원을 받아 제공되는 요양원 서비스를 통해 아주 큰 변화를 보여 준 사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치료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느낀 보람도 배 이상이다. 현재도 힘들게 혹은 홀로 외롭게 생활하시는 많은 어르신들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되는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 2017년 장기요양보험 수기공모 체험수기 장려상 용준원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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