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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나눔복지센터(또 한 명의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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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14 14:14 조회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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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로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아버지 곁으로 보내드렸다. 너른 미소를 지으며 당장이라도 나를 반겨주실 것 같은데, 어머니가 없는 집에 돌아오니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신발장 옆에는 어머니가 생전에 사용하시던 지팡이와 고무신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인을 잃은 물건 위에는 뽀얗게 먼지가 서려 있었다. 어머니가 남기고 간 잿빛 고무신을 가만히 가슴 깊이 안아보았다. 가슴이 저미는 듯했다. 93세로 떠나셨으니 천수를 누리셨지만, 이제껏 효도 한 번 변변히 못한 것 같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평생을 온몸이 부서져라 자식들을 보살피셨지만, 그 사랑을 반의반만큼도 되돌려드리지 못한 것이 자식으로서 죄송할 뿐이었다.


  그저 요양보호사분의 극진한 돌봄 덕분에 평온한 일상을 누리시며 편안히 지내다가 가셨다는 사실이 위안될 뿐이었다. 우리 요양보호사분은 자식도 하기 힘든 고된 일을 묵묵히 견디며 어머니를 친부모 이상으로 공경하고 돌봐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빛과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동행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 만약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알게 된 요양보호사분이 아니었다면 어머니의 병구완을 어떻게 했을지 눈앞이 깜깜했다. 어머니처럼 케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나서서 건강하게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도움의 손길을 내어준다는 사실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알게 됐다. 나 또한 어머니와 같은 상황이 오면 나라에서 나를 케어해주고 자식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내 곁에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뿌리 깊은 나무처럼 버티고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5년 전쯤이었다. 평소 사이가 좋았던 아내와 막내 여동생이 홀로 계시는 어머니 일로 크게 감정싸움을 벌인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연로하시다 보니 아내는 본인 몸이 힘든 줄도 모르고 자주 시골로 내려가 목욕을 시켜드리고 반찬도 갖다 드리며 불편한 것은 없는지 챙기곤 했다.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지만, 형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내가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해왔기에 아내가 맏며느리로서 도리를 하려고 더욱 신경을 썼다. 하지만 여동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이 화근이 돼 집안에 큰 분란이 일어나게 됐다.


“언니, 지난주에 엄마 챙기러 간다고 전화까지 하더니 뭘 챙겨 드렸어요?”
시골 어머니 댁에 다녀온 여동생이 아내에게 전화해서 따져 물은 것이다. 어머니께 해드린 음식을 대보라는 다분히 감정이 섞인 여동생의 말에 아내 역시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아가씨, 제가 반찬 몇 가지를 해서 드렸는데 섭섭하게 그런 말을 해요?”
“엄마 집 냉장고에 먹을 게 하나도 없던데요. 엄마도 언니가 뭐 해온 게 없다고 하고. 언니, 엄마한테 너무 소홀한 거 아니에요?”
“아가씨,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한다는 거예요?”
화가 난 아내에게 맞서 여동생도 다짜고짜 맞받아쳤다.
“언니, 그럼 우리 엄마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예요?”
꽤 그럴싸하게 둘러댄 어머니의 말에 여동생은 아내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어머니를 홀대하고 있다고 의심한 것이다. 아내는 시누이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속상한 마음에 나를 붙잡고 눈물을 펑펑 흘리기까지 했다.



  이 분란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서 열린 어머니의 생신날에서였다. 온 가족이 어머니가 계신 시골에 모였다. 아내와 여동생은 그때까지도 감정을 풀지 못한 상태였다. 생신상을 한 상 차려 배불리 먹고 차를 마시던 도중, 어머니가 갑자기 “너희들 왜 나는 밥을 안 주고 굶겨?”라고 고함을 치시는 바람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게다가 손주들 오면 준다고 사다 놓은 과자봉지를 허둥지둥 헤매기만 하다가 끝내 찾지 못하시는 게 아닌가. 평소 건망증이 있으셨지만, 건망증이라고 치부하기엔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끔 동네 사람을 잘 못 알아본다는 이장님의 말도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걱정이 돼 형제들과 함께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고, 검사 결과 치매 초기를 진단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진단에 우리 삼 남매 모두 망연자실했다. 허리가 휘도록 평생 농사일만 하셨던 어머니는 결국 당신의 몸을 돌보지 못한 대가로 치매라는 몹쓸 병을 얻으신 것이다. 두 달 전 일어났던 일이 어머니의 치매 증세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여동생이 아내에게로 와 사과하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머니를 더 이상 홀로 계시게 할 수 없었다. 아내와 상의 끝에 짐을 챙겨 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올라왔다. 어머니는 아들네 집이 낯설었던 건지 아니면 자신의 몸 상태를 눈치채신 건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으셨다. 한때는 1,000평이 넘는 밭을 혼자 일구던 강단 있는 분이었는데, 이제는 당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아채버린 것인지 어머니의 흐린 눈빛 속에는 쓸쓸함만이 가득했다.

  치매라는 놈은 어머니가 오롯이 간직하고 있던 기억을 하나둘씩 지우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었다. 아버지를 만나 사랑했던 기억, 자식을 낳고 기르며 부모가 됐던 경험, 웃고 울며 소중했던 추억들까지 모두 어머니의 기억 속에 점점 희미해져 가기 시작했다. 총기 가득한 어머니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점차 본능에만 충실한 아이가 돼가는 것 같았다. 생전 드시지도 않던 단 음식을 찾으셨고, 먹을 것 좀 달라는 말만 반복하셨다. 그러다가 정신이 온전하실 때면 “미안하다. 내가 어서 빨리 죽어야 하는데”라는 말만 반복하셨다.

  어느 순간부터는 씻기를 거부하셨다. 내가 출근하고 집에 없는 사이 아내 혼자서 어머니를 돌봐야 했는데, 욕실에 들어간 어머니가 아내를 때리고 도망치려고 하면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그때마다 아내가 억지로 몸 구석구석을 닦아내곤 했는데, 무척 힘들어했다. 아무리 며느리라고는 하지만, 예순을 넘은 나이이기에 치매 노인을 케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내는 어머니에게 벌컥 화를 내고는 금방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한숨을 내쉴 때가 많았다. 죽을힘을 다해 어머니를 돌봤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불편해하며 자신을 멀리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며 울먹거리기도 했다. 종일 어머니와 씨름하며 하루가 무사히 잘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내의 일상이 돼버린 것이다. 어머니가 가여웠고, 모든 짐을 짊어진 채 고군분투하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하루하루 지쳐가는 아내를 보면서 노심초사하던 어느 날, 우리에게 희소식이 들렸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 알게 된 것이었다.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이유로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해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돕는 제도였다. 게다가 2014년부터는 기존 3등급을 5등급까지 세분화해 어머니와 같은 경증치매 어르신들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개선했다고 했다. 본인부담금은 15% 정도여서 비용 부담도 크지 않았다. 혜택을 받기도 전이었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제출했다. 그러자 며칠 후 공단 직원이 집으로 와 어머니의 상태를 보면서 여러 가지를 조사했다. 직원이 돌아가고 약 한 달 뒤 어머니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등급별로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 안내를 받았다. 보험료를 납부할 때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실질적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그제야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어머니를 배려해 집에서 직접 케어받는 방식을 택했다. 방문요양서비스를 신청하기 전에는 낯선 사람에게 어머니를 맡긴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지만, 요양보호사분이 집으로 오신 후부터는 그런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제가 어떤 부분부터 도와드리면 될까요?”
요양보호사분은 우리 집에 방문한 첫날, 아내와 인사를 나누면서 그동안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 말에 아내는 울컥했다.
“말씀만으로도 벌써 큰 힘이 되는 것 같네요! 저희 어머니, 잘 부탁드려요!”



  요양보호사분이 집으로 오면서 여러모로 변화가 일어났다. 어머니의 식사부터 청소와 설거지, 가벼운 산책까지 도맡아 해주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내의 육체적, 정신적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어머니의 대소변을 처리하고 기저귀를 교체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투철한 직업의식과 봉사정신이 없다면 절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냐고 묻자 요양보호사분은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두 분께 못 해드린 거 이렇게라도 해드리고 싶어서요”라며“몸은 힘들어도 내 어머니처럼 챙겨드릴 수 있어서 보람도 크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분에게 특히 더 감사했던 것은 어머니 곁에서 마치 친딸처럼 감정 교류를 이어갔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굽어진 등을 토닥이거나 이마와 뺨을 어루만지며 찬찬히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줬다. 감정이 이어진 따스한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덕분에 어머니의 상태도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 역시 요양보호사분이 오신 후부터는 어느 정도 일상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요양보호사분을 친딸처럼 친숙하게 생각하셨다. 요양보호사분이 퇴근할 시간이 되면 항상 두 손을 꼭 잡으며 “꼭 내 딸 같아”라고 외치셨다.
“어머니, 내일은 쉬고 다음 날 올게요!”
“응, 꼭 와야 해!”
요양보호사분을 의지하고 가깝게 지내는 사이, 어머니의 눈 속에 비치던 쓸쓸함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어머니, 막내딸이 곁에 있으니 좋으세요?”라고 어머니께 묻자 어머니는 환한 얼굴로 “응, 좋고말고! 우리 막내딸이 제일 좋아~”라고 하셨다.

  요양보호사분 덕분에 어머니의 마지막은 평안하셨다. 늙지 않고 아프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지고 병이 생기는 게 자연의 섭리다. 병을 얻으면 당사자인 본인이 가장 힘들겠지만, 가족들의 심적 부담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다. 그런 점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우리의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따뜻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일들로 인해 삶이 흔들릴지언정,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있기에 우리가 탄 배는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다. 특히 어머니를 친자식보다 더 자식 같은 마음으로 살뜰히 보살핀 우리의 요양보호사 같은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기에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더욱 빛나는 듯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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