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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나눔복지센터(꽃 보듯 나를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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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7-20 11:16 조회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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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왔네!”
  반가워 눈이 반짝이는 엄마를 보기 위해 오늘도 길을 나선다. 나는 주말마다 우리나라 남쪽 끝 여수에서 전북 완주 소양까지 약 150km를 단숨에 달려간다. 일주일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피로가 쌓여 주말이면 좀 쉬고 싶은 유혹도 있으나 석 달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달려갔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엄마가 그곳에 계시는 한 앞으로도 계속 달려갈 것이다.

  우리 엄마는 현재 86세 치매환자다. 아버지의 병간호를 5년 정도 집에서 혼자 하시더니 가족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의 치매 현상이 나타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때서야 알았다. 엄마가 “나는 암시랑 안~혀, 아버지는 내가 있응께 걱정 허지덜 말고 느그들이나 건강혀라 잉!” 그 말만 믿고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자식들이 아는 우리 엄마는 “죽을 약에 살 약이 있단다”라고 말하면서 고비에 고비를 넘기며 우리 가족을 이끌어 오셨다. 첫째인 나부터 엄마의 든든한 등 뒤에서 엄마만 믿었다. 또 나름대로 가정을 이루며 한창 제 살림에 바빠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믿고 싶었다.



  가족회의 끝에 막내이지만 아들인 동생이 엄마를 모시기로 했다. 치매환자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멀쩡해 보이는 엄마를 모신다는 것이 가족의 불화를 일으키는 시발점이 됐다. 하루아침에 모든 삶이 담겨있는 전주를 떠나 낯선 부안으로 향한 엄마. 자식이 모신다고는 하지만 얹혀사는 모양새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조금만 비위가 상하면 “나 요양원으로 보내라”는 말로 잘해본다고 하는 아들의 속을 뒤집을 때마다 우리 엄마는 왜 이러는 걸까, 뻔히 다 알면서도 왜 이렇게 자식을 떠보는 것일까? 이런 상태로 엄마를 계속 모실 수 있을까? 동생은 또 얼마나 잠 못 자고 고민했을 것인가! 새벽이고 늦은 밤이고 구별하지 않고 딸들에게 전화해서 나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렇게 아들이 모시는 3년 중에 처음 몇 달을 제외하고 자식들은 가슴 초조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3년이 되어갈 때 아들이 더 이상 집에서는 모실 수 없으니 요양원으로 모시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환자인 엄마 비위 하나 못 맞춰 그런 말을 하느냐, 마누라 하나 설득 못 해서 우리 엄마 정신이 저렇게 멀쩡한데 요양원에 보내자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엄마가 아들 집에 계셔야 딸들이 시집에 낯을 세우지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너는 누나들에게 친정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나 하느냐, 네가 엄마를 못 모신다면 너희 집에는 발도 안 붙일 것이다’라는 소리가 집안 가득 울렸다. 엄마와의 생활을 견디다 못해 누나들에게 말을 꺼냈다가 일주일 동안 딸들은 울고불고 제정신이 아닌 시간을 보냈다.


  우리 엄마가 어떤 엄마인데 아버지 가시니 찬밥신세가 되었을까! 그것도 그냥 모시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다 줄 것 주고 모시는데 싶어 괘씸한 마음에 분노했다가, 큰딸로서 엄마를 모실 수 없는 내 설움에 울었고, 우리 엄마가 어떻게 우리를 키웠는데 늙으니 이런 신세가 됐나 싶은 마음에 서러워 울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분노와 오해와 서러운 눈물이 자식 셋을 꽁꽁 옭아 맺어 숨통을 막히게 했다.

  맞벌이하는 전주 여동생이 제부를 설득해서 엄마를 모시겠다고 해 엄마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엄마는 주야간보호센터를 다니게 됐다. 여동생이 지극정성으로 엄마를 모신 덕분에 엄마의 상태는 많이 호전돼갔다. 이렇게만 유지된다면 엄마가 가장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자식들은 엄마를 중심으로 똘똘 뭉칠 수 있었다. 그러나 작년 11월 초에 갑자기 엄마의 증상에 문제가 생겼다. 센터에서 가끔 화가 나서 오시는 것인데 동생이 전화를 해보면 별일이 없었다고만 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센터에서 귀가하려는 오후 5시부터 소란을 일으킨 엄마 때문에 새벽 5시까지 경찰이 오고, 119가 와도 해결이 안 돼 응급차로 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엄마는 3개월 동안 병원에서 치매 치료를 했다. 나는 울었다. 스스로 걸어 들어간 엄마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돼서, 스스로 밥을 먹던 엄마가 음식도 먹을 수 없어서, 물을 마시는데 손이 덜덜 떨리는 모습에, 누워 있으면서 무려 7kg이나 빠져버린 엄마가 안쓰러워서, 그렇게 밝은 엄마가 표정을 잃고 초점을 놓쳐버려서, 자식들과 길게 눈을 맞추지 않고 회피해버려서, 분노가 치매의 정점이라는데 갈 데까지 가버린 엄마를 보며 애가 탔다. 자식 셋이서 ‘이제 올 데까지 왔구나! 이제 끝이구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울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는 마지막 결정을 해야 했다.

  의사 선생님과 의논을 하니 분노는 잡힌 것 같다고 했다. 요양원으로 옮기고 싶다고 하니 그래도 좋다고 했다. 자식으로서 엄마를 모실 만큼 모셨다는 위안을 하면서 요양원행이라는 최후의 처방을 울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엄마는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한 요양원에 입소하게 됐다. 우리 엄마가 생애 처음 가족과 떨어져 입소할 곳이어서 각자 3번의 답사를 마치고 결론을 얻었다. 첫째, 첫인상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청결해 어디에서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둘째, 사무실은 물론 2층, 3층까지 요양보호사들의 미소가 따뜻했다. 셋째, 프로그램대로 진행된다면 병원이나 집에 계시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우리는 입소 후 1개월 정도 엄마의 상태를 지켜본 후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결정해보자고 결론지었다.

  놀랍게도 엄마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보름도 되지 않아 엄마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먹을 수가 없어 영양죽을 빨대로 드시던 엄마에게 영양사님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 말씀하신 찰밥을 해드렸더니 잘 드셨다고 했다. 지나가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일일이 체크해 음식을 조절해준다고 해서 놀랐다. 먹는 것은 물론 알약도 삼키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모든 약을 가루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식사도 하시고 약도 알약으로 드시게 됐다.



  한 달도 되지 않아 누워있던 엄마가 휠체어에 앉아 나를 맞이한 날에는 눈물이 나왔다. “엄마 고마워, 엄마 고마워”라고 말하며 또 울었다.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엄마가 나를 보았다. 요양보호사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더니 “들어오실 때보다 더 좋아지시니 우리도 좋아요”라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물었더니 월요일마다 재활치료도 잘 받으시고 하루 한 시간씩 걷는 연습도 꾸준히 한 결과라고 했다. 처음 사무실에서 프로그램을 소개할 때 ‘설마 제대로 다 할까? 환자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냥 두겠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보호자가 한 부탁을 벽에 써놓고 단계적으로 실행하고 있었다. 그 결과 엄마는 휠체어에서 보행기로, 보행기에서 지팡이의 단계를 2개월에 해냈다.

  웃음치료시간에 노래도 하고 즐거운 게임도 하는데 엄마는 노래하지 않고 감상만 하신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노래를 좋아하셔서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내가 만들어준 흘러간 옛 노래책 한 권을 다 끝내는 분이 왜 노래를 부르지 않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대신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선생님에게 거문고 소리를 듣고 싶으니 노래를 하지 말고 들려달라는 주문을 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점점 엄마의 감성이 살아간다는 신호로 들렸다. 자체 운동회를 했는데 엄마가 백군이어서 응원도 열심히 했으나 아쉽게도 졌다는 소식, 요즘에는 식사량이 좀 늘어간다는 소식, 어르신과 벚꽃놀이를 가고 싶은데 모셔가도 되겠냐는 물음, 일주일마다 엄마의 활동사진과 건강 상태를 문자로 받으면 마치 주간지를 받아든 것처럼 즐겁다. 우리 가족은 하나 같이 역시 우리 ‘공순 여사’ 하며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엄마만큼 자식들도 안정이 됐다. 엄마의 병문안을 하러 갔던 친척들은 걱정하며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잘 지냈던 사람들을 몰라봐서, 너무 허물어져 버린 엄마의 기개에 삶이 허망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요양원으로 옮긴 후 엄마에게 다녀온 친척들은 어떻게 이렇게 좋아질 수 있는지 감사하다면서 자식들의 효성이 엄마를 살려냈다고 말했다.

  요양원이라는 곳을 나부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면 불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들이 부모님을 집에 모시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요양원에 드나들다 보니 어떤 것이 치매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하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됐다. 엄마를 돌본다는 미명 아래 아이같이 변해가는 엄마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수시로 짜증을 내고 설명하고 가르치려 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후회하고 다시 화내고 겨우 밥을 챙겨드리고 재워드리는 것이 부모님을 모시는 것인가? 생활에 치여 엄마의 입장보다는 어느덧 나의 입장에서 엄마를 판단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아닌가? 엄마는 이미 엄마이기를 떠나서 환자라는 인격체로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전문 인력을 갖춘 요양원에서는 어르신들을 어떻게 돌보는 가를 살펴봤다. 요양원에서는 자식들처럼 어르신을 짐으로 느끼지 않는다. 어느 요양보호사님은 어르신의 모습이 귀엽기까지 할 때가 많다고 했다. 천직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또한, 가장 최적의 상태에서 규칙적인 균형 잡힌 식사와 함께 제때 약을 챙겨 드리면서 어르신의 인격을 존중한다. 기저귀를 갈 때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어르신의 상태에 따른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어르신들은 모두 출근하면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텔레비전을 보며 자다 깨다 하는 일상에서 탈출하게 된다. 요양보호사님들이 2인 1조로 돌며 어르신들에게 불편한 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어르신들의 정신 건강을 채워주기도 한다. 요양원 내의 어르신들도 익숙해지면 서로 마주치며 대화를 한다. 자식들이 할 일은 수시로 방문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주말이면 함께 바람도 쐬어 드리는 것이다. 이런 장점이 어르신의 가족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부모님을 최대한 잘 모시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요양원에서 말하는 치매 어르신을 케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이번 주 우리는 지팡이를 짚고 나온 엄마를 모시고 하룻밤을 집에서 잤다. 엄마가 참 행복해하셨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말에 엄마를 모시고 와 집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엄마를 다시 요양원으로 모시고 들어가는 길, 하던 말을 금방 잊어버리는 우리 엄마가 아이처럼 순진하게 물었다.

“지금 어디가?”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서 치료 중이잖아, 그래서 병원에 가는 거지.”
“헤어지면 또 서운해서 어찌까?”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발이 안 떨어지지~”
“그려? 그럼 안 할게. 또 와야 해?”
“응, 엄마. 잠 잘 자고, 밥도 잘 드시고, 우리 토요일에 봐요?”
“알았어, 알았어. 우리 딸은 왜 이렇게 이쁠까, 잉”

  꽃을 보듯 나를 보는 엄마의 눈을 보며, 
 "이렇게 이쁜 딸을 누가 낳았을까, 잉”하고 되물으니
“나~지, 누구것어!”
엄마의 환한 웃음처럼 엄마의 집이 된 요양원으로 가는 길이 사월의 벚꽃처럼 환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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