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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나눔복지센터(한장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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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7-05 23:17 조회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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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한 해를 보내고 돌아보는 시간에 떠올리는 울고 웃던 기억들, 계절이 바뀔 때 내리는 비나 바람의 냄새와 함께 올라오는 흑백사진 같은 그 순간, 함께 했던 그 사람, 그 목소리, 그 촉감들은 총천연색으로 피어오른다. 그럴 때면 잠시 멈추고 그 추억을 감상하곤 한다. 그 추억이 있어서 나를 돌아보고 또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것 같다.

  장기요양기관에 종사한 지 6년 차. 이제는 나에게 개인적인 추억들보다 어르신들과의 추억들이 기억 곳곳에 더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를 유난히 좋아하고 따랐던 나이다. 100살까지 사실 거라고 손가락 걸고 약속해주신 할머니. 일흔 후반의 연세에도 꼿꼿한 허리와 치매는 걱정 없다는 검사 결과로 가족들을 안심시키시고 언제나 내 편이 돼주시고 보듬어 주시던 할머니가 어느 날 변을 잘 못 보신다고 힘들어하시더니 난소암 말기 판정으로 3년 만에 가족들 곁을 떠나셨다. 이십 대 초반, 한창 대학생활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나는 수업 시간에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달려왔으나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실 수 없고, 그 어떤 말도 들으실 수 없으셨다. 사흘 전에도 통화했던 분인데, 시험 기간 끝나고 찾아뵙기로 했는데 일주일을 기다려주시지 않았다.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을 난생처음 그렇게 겪었다. 후회했다. 조금 더 자주 찾아뵙고, 조금 더 함께 시간 보내드릴 걸 하며 많이 울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집안에 어른은 계시지 않았다. 그 이후로 ‘노인’이라는 대상은 멀게 느껴졌고, 또래와 지낸 대학생활 이후의 직장생활에서도 내 주변에 흔치 않았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버지의 오랜 숙원인 요양원을 가족 사업으로 하게 됐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소지한 나를 필두로 우리 가족은 가정과 같은 요양원을 꿈꾸며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을 시작했다. 할머니를 좋아하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립고, 그때 못해드린 한을 이렇게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시작한 공동생활가정. 내 나이 28살 때의 일이다.

  대부분 사회초년생인 친구들이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와 상사에 대한 불만을 주제 삼아 대화할 때 나는 공감대가 없었다. 어르신의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고, 친구들도 공감하지 못할 부분들이었기에 그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 일을 버티냐며 놀라고, 치매나 다른 노인성 질환에 대해서도 무지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외로웠다. 힘들었다. 내가 좋아했던 할머니의 모습과 사뭇 다른 입소 어르신의 모습들이 낯설었다. 다양한 문제행동들로 밤낮없이 지켜봐야 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옷에 실수하셔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샤워를 해드려야 하는 등 육아가 뭔지, 시집살이가 뭔지 모르는 미혼인 나에게는 하나같이 낯설고 어려웠다.


  인지 저하로 의사소통이 힘들고, 지남력이 떨어지고, 혼자서 일상생활을 해내실 수 없는 어르신들이 아이 같기도 하고 때로는 호통 치시고, 도움을 뿌리치시고, 감정 기복으로 머리채를 잡으시고 따귀를 날리실 때는 시집살이하는 며느리의 설움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끼리 의지하며 가정과 같은 시설을 만들어 어르신을 부모처럼 모시자는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어떤 날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가끔 사진첩을 보고 있자면 그간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한 해 한 해를 돌아보면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변화과정과 다양한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어르신들도 계시고, 호전돼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신 어르신들도 계신다. 개원 초기부터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지내는 가족 같은 어르신들도 계신다. 처음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어르신들을 몇 년째 모시면서 이제는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 어떤 행동을 하시고, 그 행동은 무엇을 원하시는 표현인지 알 수 있게 됐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이○○ 어르신에게 보따리를 싸드리고 신발을 챙겨드린다. 곧 집에 가셔야 한다고 채비하시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꾸 옷장에서 옷을 꺼내시고 신발장에 신발을 다 꺼내셔서 왜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고, 신발과 옷을 정리하느라 바쁘기만 했었다. 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하니 힘도 들고,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녀분과 상담을 하면서 어르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어르신은 집에 남편 분이신 할아버지가 계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해지기 전에 집에 가서 영감 밥해줘야 한다고 신발과 옷을 찾으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옷과 신발을 계속 정리해드리니 어르신이 옷과 신발을 찾지 못해 반복해서 옷장을 뒤지고 신발장을 뒤지는 것이었다. 어르신은 몇 년 전에 배우자와 사별하고 우울증과 함께 치매가 발병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 어딜 가셔도 저녁시간이 되면 영감 밥해주러 가야 한다고 나가셨다고 한다. 입소시설에 계시니 실제로 집에 가진 못 하시지만 어르신의 옷과 신발을 챙겨드리고 시설 문을 열고 함께 나가서 걸어드린다. 그러면 100m도 못 가서 집에 가자하시고 다시 시설로 따라오신다. 그러면 조금은 어르신의 한을 풀어드린 것 같아 우리 마음도 조금 가볍다.


  밤에 주무시지 않고 배회를 하시며 뭔가 분주히 행하시는 박○○ 어르신을 자정까지 지켜보며 기다려 드린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제사 준비를 하시는 날이다. 처음에는 몇 시간째 배회하시며 이불을 접어놓고 베개를 쌓아 올리고 휴지나 양말을 상 차리듯 올려놓고 하시는 모습에 저러다 너무 무리하셔서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봐 말리거나 옆에 앉아서 같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화제를 돌리곤 했는데, 알고 보니 어르신은 제사 많은 집에 시집가셔서 그것이 몸에 벤 것이었다. 이제는 어르신이 배회하시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도와드린다. 탕국을 누가 끓여놨고, 생선은 정지(주방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에 있다고 안심시켜 드린다. 그리고 12시가 지나면 어르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침실로 가서 곤히 주무신다.

  홍○○ 어르신이 또 밥을 안 드신다고 하신다. 틀림없이 다른 어르신과 마찰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럴 때는 조용한 곳으로 어르신을 모시고 가서 어르신 편을 들어드리며 어르신의 이야기를 20분 정도 들어드리면 다시 밥을 드신다고 하신다.

  이렇게 어르신마다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어르신의 행동엔 이유가 있다. 대부분 치매 어르신들이라 그냥 보면 의미 없는 이상행동 같지만 가족이나 어르신과의 상담을 통해서, 또는 사례관리를 통해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해할 수 있고 맞춰드릴 수 있는 행동들이다.

  몇 년을 가족같이 지내고, 일상의 대부분을 함께 하다 보니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3년 전에 입소하셔서 1년 반을 지내시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김○○ 어르신이 생각난다. 어르신은 섬망 증세로 약을 과다복용하시고 병원에 3달 정도 입원하셨다가 우리 시설로 오셨다. 처음에는 잘 걷지도 못하시고 우울증이 심하셔서 방에만 계셨다. 처음엔 적응기간이 필요하니 직원들도 지켜보며 어르신이 마음의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잡수고 싶다는 음식들을 보호자와 상의해서 제공해드리고, 우울증도 외래진료를 통해 전문의 상담과 약물치료로 호전되어 가는 듯했다.



그런데 어르신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앞으로 쏟아질 듯 총총걸음으로 걸으셨다. 또한 밤에 잠꼬대가 심하시고 식사 시 손을 떠시기도 하셨다. 우리는 파킨슨 증후군이 의심돼 보호자와 상의 후 진료를 보았다. 예상대로 파킨슨 증후군 초기라고 했다. 바로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또한 악화를 방지하고 진행을 늦추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지원하고 격려했다. 어르신이 과거에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고 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겸 사회적응훈련을 위해 토끼판매를 해보았다. 지역주민이 토끼 3마리를 후원해주신 덕이다. 어르신은 아주 오랜만이라고 하시면서도 능숙하게 판매를 하셨다. 시장에 온 지역주민들도 처음엔 이상하게 보다가 설명을 들은 뒤 이해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그렇게 토끼 3마리를 판매한 금액으로 수박과 아이스크림을 사서 시설에 와 다른 어르신들에게 한턱내신 어르신은 그날 많이 웃으셨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난다고 하시며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르신이 사무실로 찾아오셔서 중대한 발표를 하셨다. 약은 어떻게든 잘 챙겨 먹을 테니 집에 좀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한 달에 두세 번 자녀와 동행해 한 시간 거리인 집에 가셔서 주말을 보내고 오시던 어르신인데 집엘 보내 달라고 하니 처음엔 의아하였다. 알고 보니 퇴소를 하고 싶어 하셨다. 몸 상태가 좋아지니 집이 걱정되고 집에서 하던 일들을 하시며 생활하고 싶다고 하셨다. 많이 호전되셨지만 혼자 지내실 상태는 아니시고 또 다시 과거처럼 약물 과다복용 등의 사고가 날까 봐 걱정됐지만 인지상태도 양호하시고, 체력도 많이 좋아지셨는데 입소시설보다는 집에서 생활하시는 게 정서적으로 훨씬 좋으실 것 같아 보호자와 상담을 진행했다.

  보호자도 조금 걱정하셨지만, 가까운 거리에 자녀들이 거주하고 있고 사나흘에 한 번씩 찾아뵐 수 있으니 어머니의 원대로 해드리고 싶다고 하셨다. 하지만 혼자 다시 지내시는 것에 적응 기간도 필요하고 보호자가 매일 방문할 순 없기에 방문요양 재가 서비스를 추천해드렸다. 보호자는 이렇게 요양시설이며 재가 서비스 등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잘 마련돼 있어서 자녀들의 걱정과 부담을 덜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어르신께 방문요양을 연계해드렸다. 떠나실 때는 섭섭하고 아쉬웠지만 요양원이란 곳이 들어가면 죽어서 나온다는 세간의 오해를 한층 덜어낸 일화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개원 초기부터 지금까지 꼭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있다. 어르신의 생신잔치이다. 요양원에 종사하면서 많은 어르신들을 만났고, 또 이별도 했다. 이제는 바쁜 일상에 내 생일조차 무뎌지고 있지만, 우리 어르신들의 생신에는 많은 생각이 든다. 직원들과 손수 미역국을 끓이고, 잡채, 약밥, 전, 식혜 등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어서 생신 상을 차려드리려고 노력한다. 내년에도 오늘을 축하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실제로 보호자와 상의하여 생신잔치를 다 계획해놓았는데 사흘 앞두고 주무시는 잠에 고인이 되신 어르신은 사진첩에서나 뵐 수 있다. 백발을 한 노인이 아이처럼 웃으시며 초를 불고 박수를 치며 다른 어르신들과 가족들의 축하를 받는 모습이, 모두가 웃고 있는 그 사진 한 장이,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불러일으킨다. 96세의 생신잔치였는데 97세의 생신잔치 사진이 없어서 아쉽지만 말이다.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익숙한 사람들도 잊어가고, 나 자신도 잃어가는 어르신들이지만 그분들도 나처럼 젊은 시절이 있었고, 누구보다 뜨거운 시절을 지내온 분들이 아닌가. 아름다운 추억과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어르신들의 생의 마지막을 우리가 받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약간의 부담과 무게가 있지만 이것을 굳건히 받쳐 주지 못하면 한평생 쌓아 올린 이 어르신들의 삶이 너무나 허무하게 스러져 갈 것 같다. 추억은 한 장의 사진과 같고 인생의 순간순간이 추억이 되고 그것이 쌓여서 하나의 인생 앨범이 되는 것 같다. 우리 어르신들은 앨범의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 우리에게 오셨다고 생각한다. 어르신들이 그동안 열심히 살아내시면서 한 장 한 장 모은 인생의 사진첩에 이제는 우리가 도와드려 멋진 추억으로 장식해드리고 싶다. 노쇠하고 무기력한 모습이 아닌 어르신들의 개성과 품위를 살린 한 장의 멋진 사진으로 인생 사진첩을 완성해드리고 싶다.

  더욱 공부하고, 더욱 연구하고, 더욱 노력하며 우리와 함께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굳건히 어르신들의 황혼기를 받쳐드리길 기원한다. 그리고 우리도 어르신들에게서 다양한 삶의 지혜도 배우고, 많은 것을 느끼고 성장해간다.

  내 나이 서른셋. 이 직업을 사명으로 여기고, 이 일을 비전 삼아 꿈을 키워나가고 싶다. 보통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스물여덟의 초심보다 서른셋의 작심을 더 귀하게 여기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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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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