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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나눔 복지센터(내인생의 행복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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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6-29 00:29 조회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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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하려고 거울 앞에 서서 하트 모양의 목걸이를 걸어본다. 어르신 보호자께서 그동안 부모님을 잘 돌봐주셔서 고맙다며 감사의 표시로 주신 목걸이다. 이 목걸이를 목에 걸 때마다 그 어르신 부부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생각난다.


  어르신 한 분이 튀밥을 좋아하셔서 튀밥을 사려고 튀밥 가게에 들렀다. 가게 주인인 듯한 백발의 할아버지께서는 기계가 고장이 났는지 기계를 만지고 계셨다. 내가 들어가 주문을 하는데도 못 들으신 건지 계속 기계만 만지작거리시며 혼잣말로 ‘안되네, 안되네’ 하시고 연장으로 여기저기 툭툭 치고만 계시는 것이었다. “어르신, 기계가 고장 났어요? 작동이 어떻게 안 되는데요?”라고 여쭤봐도 대답을 안 하시고 튀밥을 팔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어째 어르신이 좀 이상하네...’라고 생각하는 그때, 지팡이에 힘껏 몸을 실은 채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디디며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어머니, 아버님께서 기계가 안 돌아간다고 하시는데 고장 난 건가요?” “몰라, 뭐가 안 된다고 하는데 작동법도 모르고 저러고만 있어. 예전에는 기계를 잘 만지더니 이상하게 기억을 못 하고 고치지를 못하네”라며 난감해하셨다. 나는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조심스럽게 할머니께 몇 가지를 여쭤보았다. 어머니께서 거동이 좋지 않으신 것 같은데 매끼 식사는 어떻게 해 드시며, 집에 돌보러 오는 이가 있는지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들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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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들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어 이곳 광주에서는 두 분만이 서로 의지하며 힘겹게 살고 계셨다. 안타깝게도 평소 집에 오는 이 하나 없고, 거동이 불편해 밥을 해 먹는 것조차 힘들어 어떨 때는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한탄하시며 그동안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하셨는지 잘 알지 못하는 나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이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어르신의 아드님과 전화 통화를 해 어르신 상황과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해드리니 속히 며칠 내로 광주에 내려오겠다고 하셨다.

  다음날, 이 노부부가 마음에 밟혀 튀밥 가게를 방문해보니, 역시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계시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근처 시장에서 장을 봐와 따뜻한 밥도 지어드리고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식사를 챙겨드렸다. 구석구석 집 안 청소도 해드리고, 밀린 빨래도 세탁해 널어드리고 나오려니 어르신들은 연거푸 ‘고맙다, 고맙다’라고 하셨다.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전해지는 그분들의 따뜻하고 온화한 마음에 친근감이 느껴지면서 한편으로는 힘들게 사시는 그분들이 계속 마음에 쓰였다.

며칠 후, 어르신 아드님이 내려왔다는 소식에 직접 뵙고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드렸다. 아드님은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 들어보기는 했지만, 정작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몰랐고, 부모님을 모시는 일에 대해 선뜻 나서는 형제들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부모님은 더욱 노쇠해지시고 건강 상태도 더욱 나빠지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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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님은 5년 전 뇌경색으로 인해 왼쪽 편마비가 왔고, 점점 기억력이 나빠져 가끔 혼자서 횡설수설하시고,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했다고 하신다. 그동안 능수능란하게 다뤘던 튀밥 만드는 일도 서툴러 종종 튀밥을 태우거나 덜 튀겨 손님들로부터 불만이 늘고 말들이 많아 더 이상 튀밥 가게를 운영할 수 없어 문을 닫기로 했다고 하셨다. 또한, 어머님은 간경변(간경화) 말기로 암모니아 수치가 높아져 혼수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아 잦은 응급실행으로 생사를 넘나드신다고 하셨다.

  아드님을 통해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와 그동안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서둘러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신청을 해드렸다. 며칠 후,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분들이 방문해 인정조사가 이뤄졌고 조사 후, 두 어르신을 모시고 의사 소견서를 제출했다. 서둘러 진행한 끝에 등급 인정을 받기까지 열흘의 시간이 소요됐고, 두 분은 4등급을 받으셨다. 아울러 센터에서도 두 분을 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해 거동이 힘든 두 분을 위해 집안 곳곳에 안전 손잡이를 부착하고 필요한 복지용구를 배치해드렸다. 그리고 그간 길고 말끔하지 못한 두발도 이미용 봉사 도움을 받아 깨끗하게 이발해드렸다. 또한, 평소 두 분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 아침과 저녁 두 번 방문해 식사 제공과 복약 도움을 먼저 드리기로 했다.

  요양보호사는 음식 솜씨가 남달라 어르신들이 밥을 두 그릇씩 비울 때가 많았고, 그동안 외롭게 지내신 두 분에게 딸과 같은 요양보호사의 넉살과 애교 덕분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됐다. 두 분은 마음을 열고 그동안 살아오시며 겪으신 고단했던 일들이나 행복했던 순간을 요양보호사와 나누셨다. 자식에게 미처 말 못 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이 쌓이셨는지 매일 요양보호사가 오기를 기다리셨고, 요양보호사가 쉬는 날이면 허전해하셨다. 그동안 받지 못한 누군가의 따뜻한 섬김과 돌봄을 받으시는 중에 우리들을 많이 의지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안 여사 오늘 메뉴는 뭐야?”라며 그날 음식에 대한 궁금증을 표하기도 하시고, “오늘 우리 콩물 국수 해 먹자”라고 자의적인 표현도 하셨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녹두죽, 찰밥, 비빔밥, 냉면, 백숙 등 다양한 음식과 반찬들을 직접 만들어 제공해드렸다. 덕분에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는 날로 좋아지셨고, 계속 돌봄을 받으신 덕분에 아버님의 공격적 성향도 완화되셨다. 어르신들께서 자녀들과 전화를 주고받는 날에는 우리들에 대해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셔서, 보호자들은 항상 송구함과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셨다.

  자녀들의 빈자리를 대신해드리고 힘이 되어 드려서인지 어느 날에는 크고 무거운 수박을 사 오셔서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셨다. 어느 날에는 ‘통닭 시켜 먹자’라고 하시거나 ‘전동차가 충전이 안 된다’며 도움을 청하기도 하셨다. 심지어는 ‘죽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며 선산에 동행을 부탁하기도 하셨는데, 평일이나 주말 상관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자주 주셨다. 주변에서 다들 ‘뭘 그렇게까지 하냐’며 오지랖이 넓다고 했는데, 귀찮다는 생각보다는 그분들의 딱한 상황과 열악한 환경을 알기에 그저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분들의 따뜻한 눈길과 성품을 통해 돌아가신 부모님을 느껴서일지도 모른다.

  건강 상태가 향상된 만큼이나 아버님은 근력이 좋아지셔서 거동이 불편한 몸이지만 스스로 지팡이를 짚고 골목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운동을 하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요양보호사가 오는 골목으로 마중을 나와 반갑게 맞아주기도 하셨고, 쓰레기를 주워 대문 앞에 모아놓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니 어머니의 상태가 심각해져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했다는 요양보호사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 어머니의 정신이 혼미해져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대변을 옷과 침대에 봐버리는 등 횡설수설하시며 의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암모니아 수치가 높아져 손발을 떨고 발음도 어눌해지고 의식이 없어지는 등 사전 징후인 간성혼수가 나타났던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암모니아 수치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약을 복약하는 방법과 음식을 제공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간 아침과 저녁에 제공했던 급여제공 시간이 어머니의 입원으로 인해 오전 3시간밖에 할 수 없어서 요양보호사와 일을 분담해 두 어르신을 돌보기로 의기투합했다. 아침에는 요양보호사가 아버님을 돌봐드렸고, 저녁식사를 챙겨드리고 잠자리를 봐드리는 일이나 아버님을 모시고 면회를 다녀오는 일은 내가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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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두 어르신은 잦은 응급실행이나 입·퇴원을 할 때마다 자녀들이 쉽사리 지방에 내려오거나 신속히 대처하는 게 불가능한 상태여서 항상 병원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있어 신속히 대처해주고 돌봐주니 안심이 되고 든든하다며 자녀분들께서 감사를 표하셨다.

  어머니가 퇴원하신 후, 곧바로 급여제공 시간을 연속으로 변경해 어머니를 좀 더 넉넉하고 안정되게 돌봐드릴 수 있었다. 어머니의 대변 상태나 건강 상태를 체크하며, 전보다 기력이 쇠하고 입맛이 없어진 것을 고려해 식사 부분에 더욱 신경을 써서 돌봐드렸다. 다행히 어머니의 건강 상태는 빠르게 회복되셨다. “엄마, 손 펴 봐요, 대변은 몇 번 보셨어요?” 간성혼수 사전 징후를 수시로 관찰하고 그에 맞게 약을 조절하는 등 건강 상태를 수시로 체크한 덕분인지 그간 자주 입원했던 어머니도 입원하는 날이 점점 뜸해져 갔다.

아버님은 병원이나 마트에 갈 때 전동차를 타야만 먼 거리로 이동할 수 있으셨다. 집안에 필요한 물건을 부탁하면 전동차를 타고 사 오시는 등 심부름도 잘하시고 전동차를 타고 다녀오시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셨다. 반면에 두통을 자주 호소하셔서 병원에 모시고 가니, 의사 선생님은 뇌에 특별한 징후는 안보이지만 두통약을 처방한 대로 드셔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그러나 끝없는 우리들의 만류에도 두통이 견디기 힘들 때면 아버님은 시간과 상관없이 두통약을 수시로 복용하셨다. 다른 것에 집중하면 두통을 덜 느끼실까 해, 딸에게서 손주 재롱 모습을 동영상으로 받아 USB에 저장해 TV에서 몇 시간 반복 재생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기도 했으나 TV 볼 때는 괜찮지만, 우리가 없는 밤에는 두통약을 드셨다고 어머니께서 일러주셨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 아버지에게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같이 사는 아내를 다른 여인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성질을 내거나 쉽게 화를 내 잘 풀지 못하셨다. 전동차 사용법을 잊어버려 한참 좌석에 앉아계시기도 했고 병원에 가신다고 나간 뒤 한참 만에 그냥 돌아오시는 등 그동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보호자와 상의한 후, 병원 진료를 받고 나니 의사 선생님은 뇌경색이 재발하지는 않았지만 예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하시며 아버님께 ‘급성혈관성 치매’라는 진단을 내리셨다. 증상은 점점 심해져 자꾸 누군가 곁에 있다며 망상이나 헛소리를 할 때도 있었고 대소변 실수도 잦아졌으며, 평생 봤던 아내도 몰라보고 밤이고 낮이고 나가려는 배회증상까지 나타났다.

  어느 날 밤, 집에서 쉬고 있는데 10시쯤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 어르신 아시나요?”
“네. 무슨 일 있나요?”
경찰관이 순찰 도중에, 아버지가 밖을 나가려고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발견해 전화했다고 당장 그쪽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댁으로 가보니 어머니는 저녁 내내 아버지를 저지하시느라 몹시 지친 표정으로 현관 앞에 앉아 계셨고, 아버지는 줄곧 나가겠다며 소리치고 계셨다. 경찰관을 보낸 후, 두 분을 진정시켜 드렸지만 안심이 되지 않아 도저히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거동이 힘드신 탓에 아버지 몸집에 대응하기가 힘에 부치고 버거우신 상태셨다. 나는 아버님이 밤새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님을 지켰고, 건강이 염려스러워 어머니를 작은방으로 모셨다. 그리고 오전 7시쯤 요양보호사께 밤새 있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다소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아버지는 인지기능 저하로 사고 위험이 크니 절대 운전하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고 요양보호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전동차를 운전하고 나가셨다. 두어 시간이 흘러도 아버님은 돌아오지 않으셨고 전화를 하면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끊어버리셨다. 요양보호사와 흩어져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니고 헤집고 다녀도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 헤매었고, 찾았다는 요양보호사의 전화로 한달음에 달려가니 아버님에게서 불안한 눈빛과 얼굴을 읽을 수가 있었다. 아버지의 배회와 인지기능 저하로 인해 이런 일들을 겪다 보니 두 분만 있게 할 수 없어 어르신 집에서 함께 자야 했다. 그날 어머니도 힘이 드셨는지 손 떨림이 나타났고 대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 간성혼수 징후가 갑작스레 나타났다. 그렇다고 주무시는 아버지 혼자 놔두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갈 수도 없어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할 수 없이 대변을 못 보실 때를 대비해 사놓은 관장약을 넣어드렸더니 어머니는 배가 뒤틀린다며 발버둥을 치셨고, 혹시나 주무시는 아버님이 깰까봐 제대로 소리도 못 내시며 고통을 참으셨다. 그렇게 10여 분쯤 지나 어머니는 기저귀에 대변을 많이 보셨는데, 노랗고 굵은 대변이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마치 아이가 기저귀에 변을 놓을 때 엄마의 기쁨처럼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어머니와 나는 수고했다며 서로를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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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이 지난 후, 아버지는 더 이상 거동을 할 수 없게 돼 침대에 누워 계셨고, 말수도 없어져 허공만 보고 계실 때가 많았다. 보호자와 상의를 해보니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집에서 요양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모색하면서 동시에 요양원 입소를 위해 시설급여 신청을 하고 요양원에서 보살핌을 받으실 때의 장점을 설명하며 설득했다. 요양보호사는 장기요양 급여비용을 최대한 사용해 급여제공을 한 뒤, 비어있는 시간은 내가 어르신들을 돌보고, 저녁 6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는 간병인을 쓰게 됐다. 그래도 아버님은 제법 식사를 잘 드셨지만, 우리들의 기저귀 착용 방법이 서툴러 소변이 세거나 착용한 기저귀를 빼버리셔서 옷과 이불이 자주 젖는 등 수시로 세탁기를 돌리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한 달쯤 지나 간병 비용이 200만 원이 넘게 나오다보니 자녀들은 현실적인 고민에 빠졌고, 쉬는 날 없이 한 달 동안 수발을 했던 요양보호사, 간병인, 나, 어머니 모두 지칠 때로 지쳐 더 이상 집에서는 모실 수 없게 돼 요양원에 입소키로 결정했다. 남겨진 어머니도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지만, 인지가 있으신 어머니는 요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러나 아버님을 위해 또 어머님 건강악화에 따른 위급상황에 속히 대처하기 위해 들어가셔야 함을 설명하며 위로하고 설득했다.

  자녀들이 자주 오갈 수 있도록 광주가 아닌 서울에 있는 요양원으로 떠나는 날, 어머니와 요양보호사, 나 셋이서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어르신 부부와 함께했던 7개월은 비록 짧지만 고락을 같이하고 함께 우여곡절을 겪다보니 어느덧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돼있었다. 나는 두 분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슬픔이 몰려왔다.
“엄마, 운동도 열심히 하고 다리 힘도 길러서 꼭 다시 만나요.”
“그래. 그동안 고마웠어. 내 인생에 이렇게 행복했던 날들은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그동안 우리한테 잘 해줘서 정말 고마워. 잊지 않을게.”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들으니 ‘다시 만나자’는 말이 단지 위로의 말임을 알기에 가슴이 더욱 미어지듯 아파왔다. 차에 실려 떠나는 노부부를 보며 우리는 한참을 서서 멀리 차가 안 보일 때 까지 손을 흔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후 4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난 어김없이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건다.
“엄마, 오늘 뭐했어? 반찬은 뭐 나왔어? 프로그램은 뭐했는데? 재미있어요? 열심히 따라 하고, 운동도 하고 그래요. 봄에 안 여사님이랑 요양원에 꼭 놀러 갈게요.”

  어머니는 요양원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나쁘지 않다며 글씨 연습도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비누 만들기도 하며 아버지를 뵈러 가면서 운동도 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며 매일 자랑하기 바쁘셨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로 인해 우리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어르신 부부 인생의 행복한 날들이었다면, 시설에서는 24시간 꾸준한 돌봄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체험하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셨을 것이다. 비용 면에서도 간병 비용보다 부담이 적어 자녀들이 부모님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것, 아마도 어르신이나 자녀분들은 다양한 형태의 좋은 제도라는 것을 실감하셨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듯이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우리들 같은 전문가들이 있기에 믿고 맡길 수 있으며, 이처럼 어르신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참으로 좋은 서비스임을 자신 있게 자부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나의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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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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