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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스토리

40년 감정의 틈을 메워준 노인장기요양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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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6-16 22:02 조회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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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속담이 있듯, 오랜 병수발에 지친 가족의 마음에는 가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생업에 큰 지장을 받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물며 처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가 병들어서 돌아온 아버지를 간병하는 일은 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40년 만에 장남인 큰 남동생 집으로 돌아온 날, 우리 5남매는 엄마 생각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평생 집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자식들 뒷바라지만 하다가 조용히 눈감은 엄마. 그 마지막 표정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엄마와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아버지를 누구 하나 선뜻 반기는 이가 없었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막내 여동생의 눈에는 원망의 눈물이 매달렸다. 아버지는 막내 여동생이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두 집 살림을 시작했고, 다섯 살 되던 해에 완전히 집을 나가버렸다. 엄마는 집 나가는 아버지를 막아설 기력조차 없었다. 당시 아버지는 화려한 불빛에 빨려 들어가는 불나방 같았다.

40년 만에 본 아버지는 여전히 뻔뻔했다. 큰 남동생을 비롯한 여러 형제들이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살던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했지만 “여기저기 아픈데도 많고, 당장 갈 곳도 없는데 병든 부모를 수발들어야 하는 건 자식들의 의무가 아니냐”라고 말하며 “여기서 좀 살아야겠으니 방 좀 내다오”라고 막무가내로 나오셨다. 그렇다고 도의상 한겨울 밤에 아버지를 쫓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괴팍한 성격이 그대로 남았는지 아버지는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각 집안의 며느리와 사위들은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의 존재에 어리둥절해 했다. 아버지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처음 보는 손주 며느리나 손주 사위와는 눈도 맞추지 못하고 피했다. 한편으론 처지가 딱하고 측은하게 느껴졌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니 한 줌 남은 연민마저도 아스라이 사라졌다.





80대 중반의 노인이 돼 돌아온 아버지는 병주머니를 차고 사는 환자였다. 폐질환이 있는지 기침을 달고 살았고, 당뇨약과 신장약을 복용했다. 어딘가 모르게 거동도 불편해 보였는데, 몇 해 전 겪은 경미한 뇌졸중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 그대로 풍채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왜? 돈도 없고 아프니까 같이 살던 그 여자가 이제 그만 자기 집에서 나가 달래요?”라며 쏘아붙였다. 아버지는 헛기침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돌아갈 기색이 없는 아버지를 두고 우리 5남매는 고민에 빠졌다. 특히 5남매의 맏이인 나의 고민은 깊어갔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미움이지만, 5남매 모두 중·장년기를 넘어선 시점에서 여든 넘은 아버지를 모시는 일이 결코 녹록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 한 명 나서서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하는 가정이 없었다. 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나마 과거에 아버지와 오랜 시간을 보냈던 내가 모셨으면 좋으련만, 나도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평일에는 복지회관에서 노래교실 강사로 일하고 있었고, 주말에는 손주들도 돌봐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우리 5남매는 두 달씩 돌아가며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다. 다들 “왜 엄마와 우리를 버리고 간 아버지를 모셔야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결국엔 내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두 달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남편과 단둘이 살던 집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일은 생각보다 막막하고 답답했다. 인연을 끊고 산다던 장인을 갑자기 부양하게 됐으니 황당할 법도 한데 남편은 별말이 없었다. 오히려 힘든 건 나였다. 아버지가 헛기침 한 번 하는 것도,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아랫목에 누워서 3주 가까이 곡기를 끊고 계시다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니 우걱우걱 밥을 넘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하루는 참다못해 밥상 위에서 국그릇을 엎어버린 아버지를 보며 “어렸을 때는 그렇게 자식들 때릴 만큼 힘도 좋더니 이젠 국그릇 하나 드는 것도 그렇게 힘들어요?”라며 쏘아붙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다음 차례인 큰 남동생 집으로 옮기게 됐다. 우리 집에서 보낸 처음 두 달은 큰일 없이 지나갔지만, 큰 남동생 집으로 가면서 바로 문제가 터졌다. 올케가 아버지에게 소홀히 대하자, 아버지가 폭언을 퍼부은 모양이었다. 그전까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던 시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 환갑을 앞둔 며느리에게 막말을 했으니 집안이 시끄러울 법도 했다. 제아무리 시아버지라고 해도 서로 간에 예의는 지켜야 할 것 아니냐는 게 올케의 항변이었다. 옳은 말이었다.

문제는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다시 두 달이 지나고 이번에는 둘째 남동생 집으로 옮겨가자, 아버지 때문에 동생 내외가 이혼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만큼 아버지는 대책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식들 집을 옮겨 다닐 때마다 갖은 풍파를 일으키면서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아버지에게는 다시 한 번 뇌졸중이 찾아왔다. 그 일로 좌측이 마비돼 거동이 더 불편한 상황에 이르렀다. 성격이 유난스러워 모시기는 힘들었어도 거동이 가능해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걷는 것마저 불편해진 아버지를 집을 옮겨 가며 모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5남매가 모여 방법을 강구해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논의를 하던 중 막내 제부가 조심스럽게 노인장기요양보험 얘기를 꺼냈다. 그 당시만 해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다음날 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정확한 개념조차 몰라 이것저것 물어보던 나에게 공단 직원의 친절한 말 한마디는 희망의 빗줄기와도 같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08년부터 실시된 사회보험제도로, 건강보험 가입 대상자면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자동으로 가입돼있다고 했다.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보험료가 아깝다고 떠들어대던 지인들에게 생각 없이 맞장구쳤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공단 직원의 말에 따르면 치매나 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환을 앓아 일상생활이 곤란한 65세 이상 노인이 대상이고, 장기요양인정신청을 하면 인정조사 후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내준다고 했다. 혜택은 크게 가정을 방문해 신체활동 및 일상생활 지원, 목욕, 간호 등을 지원하는 재가급여와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해 신체활동 지원 및 심신기능의 유지 등을 지원하는 시설급여로 나뉘었다. 직원의 말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인정신청을 하니, 공단 측에서 방문조사를 나왔고 얼마 후 장기요양인정서가 발급됐다. 목 안에 박힌 가시가 빠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이 아버지를 우리 집에서 모시자고 제안했을 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지낸 두 달도 몇 년 같았는데, 또 그 기약 없는 세월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에게 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맏이로서 책임감을 갖고 아버지를 모셔보자고 얘기했다. 그래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도움을 받으니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남편의 말에 용기를 얻어 장기요양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러자 요양보호사분이 아침 일찍 집으로 찾아와 전문적인 케어를 해주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식사를 챙기는 것은 물론,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의 일상생활까지 돌봐주기 시작한 것이다. 사용한 비용 중 약 15% 정도만 본인이 부담하고, 85%는 공단에서 부담하는 방식이라 비용 부담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연간한도액 내에서 이동변기, 욕창예방방석 등의 구입비용과 전동침대 등의 대여비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고마웠던 것은 요양보호사분이 아버지의 말을 꼼꼼하게 들어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괴팍한 성격상 자식으로서도 하기 힘든 일이었는데, 요양보호사분은 마치 자신의 아버지인 것 양 극진히 돌봐줬다. 요양보호사분의 꼼꼼하고 세심한 배려 덕분에 찡그려졌던 아버지의 표정에 웃음기가 돌기 시작했다. 요양보호사분은 퇴근할 때가 되면 그날 아버지 상태나 기분을 나에게 꼼꼼히 얘기해주시곤 했다. 비록 염치없이 돌아온 아버지가 못마땅했지만, 곁에서 아버지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돌봐준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아니었더라면 아버지를 모시는 일이 훨씬 더 어렵고 가족 간에 불화도 심했을 텐데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아버지의 생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요양보호사님이 퇴근을 하면서 내게 아버지의 진심을 전해줬다. “아버님께서 자제분들께 많이 미안하신가 봐요. 미안한 게 너무 많아서 직접 말씀도 못 하시겠데요. 그래서 반대로 말도 더 퉁명스럽게 나가는 것 같다고 하시네요. 오늘도 아버님이 자식들에게 짐이 되셨다면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과거에 아버님이 서운하게 하신 게 있다면 다 풀어놓고 털어버리세요.”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 보기로 했다. 아버지 생신에 맞춰 나는 형제들을 모두 우리 집에 모이게 했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지난 세월 속에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인에 대한 죄스러움을 털어놓았고, 진심으로 미안함을 표현하셨다. 그제야 우리 5남매는 비로소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떨어낼 수 있었다. 40년이라는 세월보다 더 큰 감정의 틈을 가진 아버지와 진심 어린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아버지를 극진히 돌보며 배려해준 요양보호사님 덕분이었다. 2년 넘게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은 아버지는 그 후 증세가 악화돼 자식들의 곁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꼭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 일은 아니다. 각종 노인성 질환이 찾아오는 것은 나이를 먹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 같은 일이다. 70대 초반이 된 내 입장에서도 언젠가 나 역시 침상에 누운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밀려오곤 한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내 마음속에 드리워진 희망의 동아줄 하나를 슬며시 잡아본다. 만에 하나 나에게 피치 못할 상황이 생겨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와 같은 마음 든든한 제도가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병을 앓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고통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온기 가득한 희망의 동아줄과 같다. 오늘도 국민들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다가서서, 모두의 아픔을 함께 보듬고 케어하는 요양보호사님들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분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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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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