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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스토리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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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6-11 13:46 조회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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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장기요양보험 행복한 동행

글 : 원향숙


가죽 공예를 배우는 큰딸아이가 열심히 가방을 만들며 바느질을 잇다 비명을 지른다. ‘또 무언가 잘못됐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방문을 열어봤다. 한 땀 한 땀 이어온 정성에 그만 실수를 해 처음으로 작업을 되돌리며 한 올씩 푸느라 실망하기에 축 처진 어깨를 다시 하면 된다며 위로 삼아 토닥이고 방을 나왔다. 병마와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의 소망처럼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 엉킨 실타래를 풀어 다시 쓸 수 있도록 되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고문처럼 느껴졌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마주한 그곳에는 한없이 안쓰러운 모습으로 지난 5년 동안 초점 없는 시선으로 천정을 응시하고 미동도 없이 굳어 버리듯 야윈 몸을 침상에 의지한 채, 며느리인 내가 움직이는 사정거리 안에서 존재를 알리는 시어머님께서 얕은 신음으로 내 발목을 붙드신다. 큰 애의 작업처럼 잘못됐을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잘못 들어선 길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어머님께 찾아온 치매란 병마는 앞으로의 일을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었다.

지난 이십육 년 전 결혼이란 명목 아래 어머님과 고부관계를 맺었다. 남편을 만나 나만의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성을 쌓기 시작했고, 서툴지만 아무것도 몰랐기에 어머님 모시기를 자처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머님과 함께 시작한 신혼이기에 공들여 탑을 쌓기 위한 나의 노력은 철이 없을 때라 가능한 일이었다. 홀어머니의 육 남매 중 막내인 남편은 세상에 둘도 없을 법한 효자이다. 친정 부모님께서는 남편을 만나 결혼한 막내딸이 세상 복은 다 가졌다 할 만큼 막내 사위를 신뢰했다. 어머님을 대하는 효심을 보며 내 딸의 미래가 행복할 거란 믿음을 굳히신 지 오래다.

결혼한 지 3년쯤 됐을 때, 남편의 성실함으로 마련한 작은 이층집에서 이층엔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층엔 시어머님과 두 딸아이의 재롱을 보며 사돈이 한 지붕 아래 살게 됐다. 우연이라도 만들기 쉽지 않은 하늘이 준 인연 아래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십 년이란 세월 동안 꽃길만 걸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두 사돈은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 나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교육비에 보탬이 될까 해 직장에 나가게 됐다. 많이 망설였지만 늘 건강함을 자랑하시던 어머님을 믿고 선택한 직장에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됐다. 그 사이 어머님의 외로움이 병이 됐을 거란 짐작을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날이 오기까지는.......

5년 전 태양이 작열하던 여름날, 저녁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틈 사이 경비실의 호출로 1층 현관에 내려갔다. 지구대 경찰까지 대동한 그 자리에 어머님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돼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려 울음을 터뜨리셨다. “애미야, 애미야!” 애타게 나를 찾는 어머니를 안아드렸다. 급하게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향했고 여러 절차를 거쳐 뇌신경센터 진료를 받게 됐다. 알츠하이머 치매라는 진단과 넘어질 때 충격으로 인한 편마비가 진행되고 어머님은 거동을 못 하게 돼 자리에만 누워 계시게 됐다. 시작도 몰랐는데 이미 많이 진행됐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운 밤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일탈의 자유로운 달콤함에 빠져 어머님의 안위를 살피지 못한 자책이 나를 힘들게 했다.


하루가 다르게 어머님의 치매는 급격히 진행됐다. 심지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환청에 시달리며 며느리인 내게 여보라고 부르시기까지 했다. 긴병에 효자 없다지만 형제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무조건 시설에 입소하기를 권유했다. 그로 인해 끈끈하던 형제애는 서로가 데면데면하며 왕래가 줄어들게 됐다. 스트레스가 심한 남편은 혈뇨를 쏟아내며 마음을 잡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남편의 심정을 알기에 마음을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힘들었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어머님의 기억이 잠시라도 돌아왔을 때 어머님 곁에 내가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모든 것을 내게 맡긴 채 천진한 아기의 모습으로 깊은 잠에 빠져드신 어머님이 곁에 계시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기저귀를 갈고 어머님과 한바탕 전쟁을 치른 후 잠시 숨을 돌릴만하니 전화벨이 울렸다. 한동안 뜸하시던 큰형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아는 지인이 요양보호사를 하고 있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이용해보라는 내용이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로 왕래를 못 하게 됐지만, 마음은 편치 않으셨나보다. 생각도 못 했는데 어머님을 위한 도움이라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노인장기요양보험 운영센터에 전화를 걸어 장기요양 인정신청을 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란 고령이나 치매, 중풍, 파킨슨 등 노인성 질병으로 일상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이 수급자로 인정받은 경우, 수급자의 가정이나 장기요양기관(입소시설, 주야간보호, 단기보호)에서 신체활동이나 인지활동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제도라고, 공단 직원의 배려가 담긴 설명으로 절차를 쉽게 이해하게 됐다. 장기요양 인정조사를 위한 직원의 방문이 있었고 의사 소견서 제출과 장기요양 등급판정을 받아 장기요양 인정서를 받게 됐다. 어머니께선 2등급을 받으셨다. 심신의 기능상태 장애로 일상생활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처음 인정서를 받게 되던 날 소정의 교육이 있어서 공단에 방문했다. 이미 그곳에는 나와 같이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둔 보호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어두운 표정에서 읽히듯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문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후 공단 직원의 교육을 듣던 중에 가슴에 와 닿은 한마디가 내게 또 한 번의 용기를 줬다. 치매라는 병마로부터 사회 개개인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국가가 나섰다는 점, 덧붙여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이용하면서 제일 좋은 방법은 가족들의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님과 함께해야 할 앞으로의 일을 떠올리며 전과는 다른 든든한 지원군을 얻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치매 어머니 봉양으로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나에게 국민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내 삶의 방향에 지표가 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등급을 받고 몇 해를 가족의 힘으로 극복해보려 두 딸아이와 함께 마음을 모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어머님의 치매는 폭력성이 없었다. 지난날 어머님 성품이 더없이 사랑스럽고 맑은 어린아이의 천진한 모습으로 내 가슴에 들어오셨다. 지금은 인지기능 저하로 온몸이 굳어져 콧줄로 영양 캔에 의존한 채 하루하루를 연장하고 계신다.

몇 해 동안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기에 공단 직원의 전화를 받게 됐다. 형제들보다 따듯한 위로의 말로 나를 대하는 공단 직원의 친절함이 가슴을 울렸다. 직원은 가족인 요양보호사 제도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해 자격을 취득하면 가족이 부모를 모시면서 소정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을 대비하며 공부하니 보다 전문적으로 어머님을 케어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두 딸아이 방학을 이용해 할머니를 보살펴드리게 하고 그 도움으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또 몇 해가 지나 1등급으로 인정받으신 우리 어머님. 6년째 어머님께서는 우리 곁을 지키고 계셨다. 흐르는 세월에 장사 없듯이 어머님께서는 온몸이 굳어져 오늘도 당신의 모든 것을 내게 맡긴 채 깊은 잠에 빠져드신다. 오랜 병상 생활로 기저귀 발진으로 인한 욕창이 발생할까 노심초사 살피던 중 공단의 복지용구를 이용할 수 있다는 혜택을 접하게 됐다. 환자의 상태에 맞춤형으로 제작된 전동침대를 이용하게 돼 보다 나은 환경을 어머님께 만들어 드릴 수 있었다. 욕창 예방 매트리스도 대여받아 한시름 덜게 됐다. 복지용구 또한, 장기요양 인정서를 받게 되면 등급에 따라 책정된 장기요양급여의 월 한도액에서 15% 정도만 수급자 본인이 부담하고 85%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장기요양기관으로 지급하게 되는데, 정해진 한도액 범위 내에서 이용할 수 있다.





집에서 가족이 직접 케어하기를 희망한 우리 가족은 취득한 요양보호사 자격증 덕분에 받게 된 소정의 급여를 기저귀와 약값에 보탰고 늘 불안한 마음에 방문간호 서비스로 오게 된 간호사 선생님 덕에 어머님을 지켜드릴 수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순리대로 가는 길을 역행할 수는 없다. 또 누군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주저 없이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대해 앞장서 알려주리라 마음먹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처럼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안위를 살핀다면,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 쌓은 가정이란 공든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이십육 년 동안 어머님의 내리사랑으로 버텨온 나의 결혼생활은 얼마가 될지 모를 어머님과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한 탑 한 탑 공든 탑을 쌓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치매라는 병마로 까맣게 잊어버린 사랑하는 우리 어머님과 멋진 이별을 하는 그날까지 의식 없이 흐느끼듯 작은 숨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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